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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8일~8월 17일
배낭여행은 역마살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약간의 용기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해 볼 만한 여행이다. 이번 여행은 딸이 항공료를 부담했고, 휴가를 우리 여행 일자에 맞춰 14일간 함께한 여행이었다. 막상 우리보다 더 더운 중동의 사막지대로 여행하려니까 더위와 물(사워) 사정, 음식 적응 등 많이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딸과 함께 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항공권 예약과 여행 정보 수집을 딸에게 일임했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그래도 여행인지라 인터넷을 뒤져 국가정보, 출입국 정보, 관광지 정보, 여행자들의 여행기 등을 모아 세 권(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의 가이드 북을 만들었다. 이집트는 ‘세계로 간다 편의 이집트’ 이스라엘은 ‘걸어서 이스라엘’ 책을 구입했다.
여행 기간은 7월 18일~8월 17일 이었고,
일정은 카이로(1)-아스완 가는 열차(1)-아스완(2)-룩소르(2)-후르가다(1)-다합(3)-버스(1)-카이로(2)-버스(1)-와디무사(2)-암만(2)-다마스쿠스(4)-하마(2)-암만(1)-예루살렘(2)-다합(1)-버스(1)-비행기(1)였다. 여행 경로가 비경제적이었던 것은 이미 딸은 터키여행을 다녀왔고, 중간에 딸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만 텔아비브 out을 할 수 있었는데 싼 항공권에만 매달리다가 이런 코스가 되어버렸다. 홍해의 진수인 스쿠버다이빙을 계획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차질이 생겨서 후르가다와 다합을 경유하는 여행을 하다 보니 우리 부부는 다합~카이로를 세 번이나 오고 가는 낭비를 했다. 여행 경비는 항공권(86만 원) 포함 딸은 150만 원, 우리 부부는 일인당 약 250만 원 들었다. 환전은 1달러에 1,280원이었다. 여행비를 올리는 것은 다음 여행자들이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여행 행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참고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만나 많은 도움을 준 젊은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조잡한 글과 사진을 올려 본다.
인천~타슈켄트~카이로
7월 18일(토)
어제부터 부산을 떨고 아침에 일어나 또 떤다. 아들네 집을 다녀오고 짐을 싸고 또 풀었다 싸고 그래도 완벽하지 않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놓은 듯 찜찜한 가운데 10:10 대한항공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신종 플루는 관계가 없는지 공항은 그래도 바쁘다. 항공권 등급별로 긴 줄을 서서 탑승권을 발급받는 절차가 귀찮으면 여행은 출발조차 안 되겠지......,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13:00 탑승 13:40 이륙했다. 강풍주의보가 있었는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늘 이착륙 때 불안감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통로 옆 자리에는 타슈켄트 여인이 앉아있는데 암내가 대단하다. 구역질이 나 토할 것 같을 정도다. 다행히 빈 좌석이 많아서 자리를 옮겼다. 인종에 따라 식생활의 차이로 나는 냄새일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냄새가 날까? 점심으로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사이 비행기는 중국의 건조지대를 지나 고비사막을 상공을 지나고 있다.
중국의 건조 지대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톈산산맥을 넘어가는데 만년설이 꼭 흰 구름처럼 보인다. 헌텅그리산(6,995m, 톈산산맥 최고봉)이 있으니 만년설이 여름에도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년설이 마치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타클라마칸사막 넘어 멀리 보이는 것이 파미르 고원인 것 같다. 골짜기마다 녹음이 보이고 여기저기 마을 보인다.
톈산 산맥의 만년설과 산하
산지를 지나 초원이 나타나고 푸르게 자란 곡물과 촌락, 도시가 나타나면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공항에 접근한다.
우즈베키스탄 농촌과 수도 타슈켄트시
현지시간은 오후 5시 온도는 36℃이다. 탑승구 통로에서 흡연을 하고 금연구역을 따로 두고 있는 낯선 공항이다. 대기실까지 나갔다가 다시 검색(대충 하는 것 같은데 신발을 벗으란다)을 한 후 탑승 6:15분 이륙한 비행기는 또 건조초원을 지나 사막 상공을 지난다. 아마도 이란 시라아를 지나는 것 같았으나 밤 속으로 지구가 사라졌다.
9:50분 카이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자증지를 사서 입국비자와 입국신고를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오니 밤인데도 33℃로 열기가 가득했다. 백인 여인의 마중과 pick up으로 또 다른 여행자 1명과 함께 수월하게 숙소로 향했다. 현대 베르나 차는 차로를 안 지키며 100km/h를 달려 불안하기도 했지만 양 옆으로 펼쳐진 사막에 눈을 빼앗겼다. 한 달 동안 볼 사막이지만 대도시 주변까지 펼쳐진 사막에서의 이집트인들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11:30분 우리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한국인 여행자 5명이 있었다. 숙소를 안내받고 내일의 일정은 아스완 열차 표 예약과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9일(일)
새벽 4시 40분 경과 5시 이슬람교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방송 소리에 깨어 잠이 안 온다. 시차가 6시간이니 잠이 올 리가 없다. 7시가 되어도 밖이 조용하다. 8시 30분이 식사시간이라니 답답했다. 성급한 아내는 주인장을 깨우지만 요리사가 출근해야 한단다. 요리사(이집트인)는 사골 국에 백반(쌀이 찰지고 맛있다) 장아찌 상추 호박부침 젓갈 다지기 등을 정성스럽게 차려냈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9:30분 집을 나와 택시 타고(5파운드-1파운드는 약 230원) 전철 타고(1P) 무바라크 역에 내려 람세스 역에서 아스완 가는 1등 좌석을 예매했다. 그런데 차표에는 분명히 165P인데 170P를 내란다. 5P는 적십자회비라나 뭐라나……. 황당했지만 영수증을 주는데 할 수 없었다. 다시 지하철로 사다트 역에 내려 타히리르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다되었다. 우선 HSBC에서 환전(1달러에 5.569P)을 하고 KFC에서 점심을 먹고 광장을 둘러보았다. 거리는 복잡 지저분하고 교통신호는 있으나마나 이고 아무 곳이나 도로를 횡단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조심하라더니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에어컨이 없는 차, 승하차문을 열고 달리는 버스. 달리는 차에 올라타는 사람 등 혼란스럽다. 사람들은 긴팔 옷을 입고 다니며 여자들은 검정 천으로 눈만 내놓고 다 가리고 다닌다. 얼마나 더울까? 38℃라는데……. 행복할까?
타히리르 광장과 지하철 내부 모습
고고학 박물관(입장료 60P)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중국인 단체, 유럽인 단체들도 있다. 정문과 현관에서 검색을 두 번이나 한다. 카메라와 칼을 보관하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선풍기로 냉방을 하고 있었다. 투탕카멘왕의 보물과 람세스 2세의 미라 전시로 유명하지만 전시물이 너무 많아 박물관이 아니라 유물들을 왕조시대별로 분류 보관하는 창고 같은 느낌이 든다. 2층의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실(3호실)과 보석 실은 에어컨이 있어서인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미라 실(56호)은 또다시 입장료를 100P 내야 한다. 람세스 2세를 중심으로 11명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다. 언제 부활하려나? 기다려진다. 책을 뒤져가며 돌아보긴 했지만 전시실이 덥고 너무 많아서(1⋅2 층 합쳐서 107실) 집에 가서 다시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한 하릴리시장(14C말에 형성된 시장)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데 20~25P 달란다. 20여 분간 여러 대와 흥정을 해서 10P에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낡은 차에 에어컨은 없고 사이드미러도 없다. 그래도 영어로 거리 설명을 잘해주어서 카이로 중심가를 대충 감 잡게 되었다. 시장에는 상점에 비해서 관광객이 없었다. 그런데 시장을 지나가질 못하겠다. 어디 사람인지 탐색하느라 ‘니하오’ ‘오하요~’ 하다가 코리안 하니까 ‘언니’ ‘싸요’ 등을 하면서 호객행위가 심하며 물건 값이 들쑥날쑥하고 비싸다. 거의 중국산이었고 조잡했다. 나중에 다시 와야 할 곳이라 물가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현지인들의 시장 쪽으로 가니까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물건 값이 많이 싸졌다. 아내와 딸 스카프(15P) 내 갈라비아(이집트인들의 남자옷 40P) 이집트 여성 상의(15P)를 산 후 택시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오다가 슈퍼에 들려 밤에 열차에서 먹을 과일과 빵 음료 물(1.5L에 3P)을 샀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더위 먹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워를 한 후 라면과 밥을 저녁(20P)으로 먹고 우리 게스트하우스엔 pick up과 1박 1식에 100불(세 명)을 냈다. 밤에 도착한 낯선 한국인을 위한 한인 게스트하우스는 다들 조금 비싸다.
배낭을 메고 다시 택시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무바라크 역에 내리니 땀으로 등이 흥건하게 젖어왔다. 참아야 한다. 여름에 더운 여름 나라 여행 온 것이 잘못이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광고가 생각났다. 밤 10:35 10분 늦게 열차는 출발했다. 996 열차 1호차 실내는 1열에 좌석(우리나라 우등고속 좌석정도 넓이) 세 개가 한쪽차창으로 붙어있고 반대편은 통로였다. 에어컨이 처음에는 시원하더니 점점 추워진다. 마주 앉은 호주 청년은 반바지에 반팔이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 했더니 배낭에서 얇은 침낭 같은 이불을 꺼내 발끝에서 머리까지 덮어쓴다. 이런 여행용 이불이 우리나라도 있나 알아보아야겠다. 우리도 옷과 양말을 꺼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잠이 든다.
다음편 부터는 휘문 뫼올산악회 카페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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