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휘문고교 교지(2010)에 실었던 내용(18명이 17일간 트래킹)을 올린 것입니다.
ABC(Annapurna Base Camp)와 Poon Hill 전망대 Trekking
1. 산이 있어 그곳에 오른다.
산이란 지표가 100m를 넘어야 산(건설교통부 기준, 영국은 1,000 feet 이상, 미국은 2,000 feet 이상)이라고 하는데 남한은 국토 면적의 65.2%가 산이다. 산은 남한에만 4,440개(산림청 통계)로 경상북도(680개)에 제일 많다고 한다. 이렇게 산이 많다 보니 조상 대대로 산과 함께 호흡하면서 위로는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당나라) 장군이 파미르 고원을 넘나들었던 산악인의 기질을, 아래로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전 세계 완등자 20명 중 4명(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의 극한도전 정신을 낳게 한 것이리라 본다. 국민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산에 자주 오르는 것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내력이라고 하면 썰렁할까? 그렇다면 등산, 등반, 등정, Trekking은 어떻게 다를까?
등산(登山)은 단순히 발을 이용하여 취미활동이나 건강 증진을 위하여 오르기도 하지만 ‘등산은 스포츠이며 탈출이고 정열적이며 일종의 종교와 같다’(8,481m의 마칼루 봉을 초등한 프랑스 원정 대장 쟝 프랑코의 말)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미지의 높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는 것이 등산일 것이다.
등반(登攀)이란 반(攀) 자가 ‘더위잡을 반’ 즉 ‘무엇을 붙잡고 오르다’라는 뜻으로 손발과 등반 장비를 이용하여 험한 산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암벽등반, 빙벽등반, 고산등반이 좋은 예이다.
등정(登頂)이란 정(頂) 자가 ‘정수리’ 혹은 ‘꼭대기’이므로 산 정상에 오르는 일을 말한다. 낮게는 구룡산 등정, 높게는 Everest 등정이 있지만, Annapurna 등정을 끝으로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8,000m 급 14좌를 완등한 오은선 대장의 등정이 값진 일이다.
Trekking이란 오래 걷기 또는 산악지대를 며칠 내지 몇 주에 걸쳐 걸어 다니는 오지여행을 말한다. 백과사전에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ㆍ들을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여행이며,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달구지를 타고 정처 없이 집단 이주한 데서 유래하였단다. 전문 산악인들이 개발한 네팔 히말라야의 험한 산악길이나, New Zealand 남섬의 Milford sound Track, Inca Trail이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Trekking이란 용어로 정착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올레’나 ‘둘레길’ 걷기가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면 왜 산에 오를까?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Because it is there)'라고 말한 조지 말로리(1924년 최초의 Everest 등정을 앞두고 원정을 떠나기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부인이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며 죽을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까?'라는 질문에 답한 명언, 말로리는 정상 600m 아래에서 엔드류 어빙과 함께 실종된 지 75년 만인 1999년 시신이 발견됨)의 명언으로 대신한다.
2. Trekking을 위한 준비
뫼올 산악회(휘문중고등학교 교직원 산악회, 1995년 발족함)의 계획(제 4 회 해외 산행)에 따라 2008년 4월 희망회원(16명) 모집하고 매월 10만 원씩 15회 적립식 Fund를 들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다. 목적지가 중국의 쓰구냥산(쓰촨 성)이었으나 2008년 가을 미국의 Lehman Brothers 은행의 파산으로 인한 금융위기로 펀드는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해 사태를 관망하던 중 2009년 5월 중국 쓰촨 성 대지진으로 계획을 Annapurna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대책으로 다행히 펀드는 플러스로 돌아섰고, 2009년 9월 하순 최종 희망자 18명(존칭 생략, 이춘복, 최성병, 소재옥, 이남표, 정홍영, 유재연, 임승규, 조항열, 오기권, 강명구, 다른 학교 교사 5명, 사모님 3명)을 확정했다. Trekking을 위한 기본 일정은 2010년 1월 5일~1월 21일(17일간)로 하고, 항공요금의 절약을 위해 운영의 묘를 살리려 일정을 다섯 가지 코스(기본일정 17일간 5명, 기본일정+방콕 20일간 2명, 기본일정+방콕, 파타야 23일간 2명, 기본일정+앙코르와트 23일간 6명, 기본일정+방콕, 푸껫 32일간 1명, 기본일정+방콕, 미얀마 32일간 2명)로 확대하고 여권 복사본을 수합한 후 항공권 예약에 착수했다. 여행은 항공권 예약부터라는데 이제 시작인 셈이다.
1차 회의(12월 1일)에서 여행 방식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배낭여행으로 하고, 배낭여행의 취지를 살려 기본일정을 함께한 후 각자 선택한 코스로 배낭여행 현장 실습을 하기로 확정했다. 여행일정과 개인 준비물 목록을 배부하고 여행에 관한 질의응답으로 궁금증(고소증, 추위, 음식, 숙소 상황)을 해소하고, 여행자료 조사를 분담(네팔자료-유재연, 앙코르와트-조항열, 방콕-유재연, 미얀마-임승규)했다. 현지 연락(네팔, 방콕, 씨엠리업) 및 예약(네팔 국립공원 permit과 TIMS(Tourist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Sherpa, Porter, 요리사, 숙소, 네팔 전세버스, 네팔 국내선 항공, 해외여행자 보험, 네팔 비자, Pick up)은 물론 내가 해야 했다. 네팔에 두 번 다녀왔고, 그동안 배낭여행을 몇 번 한 경험이 있어 추진하게 된 업보라고 해야 할까? 각자가 조사한 자료를 모아 여행가이드북을 16부 인쇄하고 책자로 제본하였다. 2차 회의(12월 23일)에서는 회원의 직책(고문, 산악대장, 총무)과 업무를 분담(총 진행, 여행 코스별 조장)하고, 침실 조 편성, 여행 자료집 배부, 짐 꾸리기. 화폐 준비 방법, 복장 준비(한국은 겨울, 방콕은 여름 날씨), 공항 집합시간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있었다. 네팔 비자는 도착 비자도 있지만 서울에서 받았고, 네팔의 여행사 ‘네팔짱’을 통해 Sherpa(한국어 가능자) 1명, Porter 9명, 요리사 1명, 전세버스, 네팔 국내선 항공, 공항 Pick up, Annapurna 입산 허가를 예약하고 입산허가를 위한 증명사진을 이메일로 보냈다. 방콕에서 공항 Pick up과 이동차량, 숙소, 방콕에서 캄보디아 국경까지 가는 버스는 방콕 Khaosan Road에 있는 ‘홍익여행사’를 통해서 예약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그리고 캄보디아 국경에서의 Pick up과 씨엠리업의 숙소, 앙코르와트 관광 전세차량은 ‘글로벌 장원빌라’를 이용했다. 위의 모든 업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들이다. 그리고 파타야는 ‘포인트 투어’를, 방콕~양곤 항공은 Air Asia를 이용했다. 해외여행자 보험은 동부화재를 통해 단체로 1억 원 보험에 가입하였으나 일정에 따라 요금이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항공료를 송금하고 나니 일이 다 된 듯했다. 그렇지만 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 회원에게 문자를 보내 환전이 필요한 원화를 받아 강명구선생님이 단체로 환전했다.
3. 인천에서 Kathmandu~Pokhara
1월 5일 18시 인천 공항에 지각없이 집합한 후 처음으로 모든 회원(지방 회원이 3명)이 모여 인사를 나누었다. 개인 복장을 점검하고 수하물을 정리한 다음 탑승수속을 마쳤으나 폭설이 내려 출발이 지연된다고 하더니 21:15분 항공기는 23:15분에 이륙하였다.
6일 02:00경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신고 후 짐을 찾아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데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몇 명이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호텔Pick up버스 도착이 지체되어 4시경 공항 인근 Miracle Hometel에 도착하여 객실을 배정하고 짧지만 꿈도 없는 눈을 붙였다. 아침은 뷔페로 먹고 11:00에 Check out 하고 호텔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발권을 하지 않는다. 걱정했던 네팔항공이 역시 언제 갈지 모른단다. 발권을 기다리다가 일부 회원은 마사지를 받고 일부는 무료하게 대기실을 지키고 있었다. 출발 시간과 탑승게이트도 없는 항공권을 발권하고 출국신고를 한 후 탑승 대기실로 이동하여 네팔항공에서 제공한 Meal voucher(200밧)로 점심을 먹고 면세점을 순회한다. 출발시각이 19:30으로 안내판에 떴으나 Gate 번호가 없다. 기다리다 지쳐 한 명은 취침실에 가서 자고, 남은 회원들은 한 곳에 모여 면세 맥주와 양주로 무료함을 달랬다. 조항열선생님은 항공사에 저녁 Meal voucher를 구하러 다녔으나 허사였고, 답답해서 Kathmandu로 전화를 걸어 지연됨을 알렸더니 그제서 네팔항공기가 Kathmandu를 출발했단다. 14:20분 항공기는 결국 7시간 지연하여 21:15분에 이륙하였다. 네팔항공사가 여행자의 체력을 착취하는 것 같았다. 많이 지연된 보상이라도 되듯 좀 좋은 비행기가 오길 기원했지만 네팔 비행기는 좌석 모니터는커녕 큰 화면도 없는 낡은 seat가 우릴 반겼다. 기내식은 ‘시장이 반찬’이라 꿀맛으로 먹기는 했다.
7일 01:00 경 Kathmandu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받으로 가는 도중 한 명이 짐을 뒤지며 여권이 없어졌단다.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네팔인 중 티베트계 손에 여권이 들어갔다면 한 밤 중에 대사관도 다 잘 텐데 어쩌면 좋을까 하고 걱정했다. 참 일이 안 풀린다 하면서 나머지 회원들은 입국수속대로 보내고, 공항근무자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항공기로 함께 가다가 더 이상 못 들어간다고 하면서 무전으로 연락한다. 좌석 밑에 여권이 떨어져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약 10여 분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배낭여행으로 와서 별별 경험을 다하게 되었구나 하면서 아르헨티나에서 동행자가 여권을 도난당했을 때 재발급받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 둘 걸 하고 후회도 했다. 여권이 있다는 연락이 있은 후에 멀리 한 사람이 어둠 속에 걸어온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권을 받아 안도하고 들어선 공항 실내는 입국심사대에 컴퓨터 한 대 없는 초라한 공항이다. 우리를 Pick up 하러 온 네팔인들은 세수를 며칠 안 한 것처럼 햇빛에 그을려 있었고 주차장의 차량들은 낡은 소형차가 대부분이었다. 간신히 두 대에 짐을 나누어 싣고 네팔짱(Guest house & 여행사)에 01:00 경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난방이 없는 객실은 사람덕을 보려고 했으나 참을만했다. 처음 온 회원들은 첫날부터 잠자리가 불편하겠지만 앞으로 더 나쁜 침실이 기다리고 있으니 참으시길 기대한다. 강총무와 나는 네팔짱 두목(여사장)님과 Sherpa(18불/일), Porter(10불/일), 요리사(15불/일), 중형버스 전세비용(Kathmandu~Pokhara, 200불)을 치르고 내일 아침식사 메뉴 선정, 루피 환전, 침낭 10개와 스틱 1조 대여를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8시 아침 식사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중 선택해 맛있게 먹었다. Trekking 경비로 6,000달러를 환전(1달러=72.5루피)하여 네 명이 분산 지참(분실이나 도난에 대비)하고, 준비물이 부족한 회원에게 침낭과 스틱을 배정하고 Cargo bag(보통 100~120L 정도의 Trekking용 가방)을 자전거 Rickshaw에 싣고 버스로 옮긴다. 네팔짱 직원들이 모두 나와 큰 Cargo bag은 옮겨주고, 개인 배낭은 회원들이 운반한다. 아직 우린 Sherpa와 Porter(Pokhara에서 합류 예정)가 없어서 우리가 짐을 날라야 한다. 버스에 기사, 요리사, 네팔짱 양아들, 회원 18명 등 21명이 타고 9시 30분 Pokhara로 출발했다. 어제 늦게 온 탓에 출발이 늦어져 도로에서 교통정체에 갇혔다. Kathmandu 시내의 많은 건물들은 낡을 대로 낡았고, 중앙선도 없는 좁은 도로는 무질서하며 좀 더 빨리 가려는 차들이 엉켜 Klaxon을 눌러 요란하다. 낡은 자동차들은 매연을 많이 배출해 공해가 심해서 눈이 따갑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를 못한다’드니 언제 번듯한 수도로 변할까?
도시를 벗어난 중형버스는 한계령보다 훨씬 더한 곡선도로를 힘들게 넘어서 12시경 강가의 깔끔하고 경치가 좋은 Blue Heaven이라는 식당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물론 반찬이 없는 달랑 볶음밥 한 접시가 전부이고 물은 사 먹어야 한다. 그래서 용돈으로 500R(루피, 1루피= 약 17원)씩 나누어 주었다. Pokhara로 가는 도중에는 변변한 휴게소가 없고 간이 버스정류장인 산골마을 장터가 고작이다. 도로변에는 누추한 가옥과 할 일 없이 빈둥대는 사람들이 양지쪽에 앉아 놀고 있다. 17시경 Pokhara(800m) 숙소(Kalety Hotel)에 도착하여 Sherpa(이름은 JAYA, 한국에서 3년간 일해 한국어를 잘하고 인상이 좋은 30대)를 만난 후, 객실을 배정(강명구총무 담당)하고 식사를 하러 적당한 식당을 찾아갔다. 회원이 많아 식사 메뉴가 복잡해 식당 주인이 어리둥절했으나 네팔 음식에 대한 처음의 선택이니 의견을 존중해 다섯 가지를 주문해서 식사했다. 네팔은 전기사정이 좋지 않다. 식사할 때부터 전기가 나가 촛불로 조명을 한다. 특히 저녁 시간대는 전기 사정이 나쁘단다. 다른 회원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 Sherpa, 총무와 함께 내일의 식수와 Trekking 도중 사용할 물 정수제를 산 후, Pokhara 네팔짱에 들려 Naya Pul까지 버스 왕복, Pokhara 숙소 예약(16, 17일), 국내선 항공 일정을 확인하고 만약을 위한 지원 약속을 해 두고 잠자리에 든다.
4. Trekking
1월 8일 금요일(1일차): Pokhara~Ulleri
7시 집합해서 필요 없는 짐은 호텔에 보관(아이젠과 한여름옷-동남아 추가 여행자)하고, Cargo bag은 Porter들이 버스 지붕 위에 싣는다. 7시 30분 출발예정이었으나 Sherpa가 늦게 와 8시 15분 31명(회원 18명, Sherpa, Porter 10명, 요리사, 네팔짱 아들)이 출발해 가다가 아침간식으로 귤을 사서 싣고 Naya Pul로 출발했다. 도로는 포장과 비포장이 섞여있었고, 산사태로 좁아진 도로를 달려 약 1,500m의 고개를 넘어 Naya Pul에 9시 30분쯤 도착했다. Naya Pul(1,070m)은 많은 사람들이 ABC Trekking 출발점으로 이용한다. 2006년보다는 많이 정비된 모습이다. 9일간 운송수단이 없는 길을 따라 Trekking을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로 기념사진을 찍고, Trekking의 일반적인 주의 사항을 전달한 후 10시경 출발했다.
약 30분 정도 걷다가 Birethanti(1,080m)에서 아침으로 계란과 짜이(네팔차)를 먹고 다시 출발했다. 길은 전보다 좋아 차들이 다니고 있었고 기념품점과 잘 지어진 Lodge들의 수가 많이 늘었지만, 노새와 당나귀가 다니면서 배설한 배설물이 날려 먼지가 많은 것은 여전했다. 길은 하천을 따라 평지를 지나자 계속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날씨가 더워 옷을 벗고 반팔 차림으로 가야했다. Sudame(1340m)에서 점심(닭볶음밥)이 준비되는 동안 몇몇 회원들은 도로 옆에 있는 학교에서 음악수업을 참관했다. 열악한 교실과 교사 3명, 학생 60명인 학교는 금요일이라 야외 수업으로 전통무용과 노래를 익힌단다. 햇볕에 많이 그을린 초등학생들에게 준비해 간 한 봉지의 볼펜을 선물하는 회원도 있었다.
아침을 대충 먹은 터라 ‘게 눈 감추듯’ 점심을 먹고 Hille(1,520m)을 지나 Tirkhedhunga(1,540m)까지는 그런대로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과 풀들이 있었고 냇물이 가끔 있어서 손을 닦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길가는 모두 농경지였는데 산비탈에도 완만한 곳은 모두 농경지로 개간되어 있고 취락이 발달해 있다. 그 중에 큰 건물은 학교인 듯 보였다. Tirkhedhunga부터 Ulleri(2,080m)까지는 약 3,300 계단(표고차 500m에 계단만 있다고 보면 됨)을 오르는 급경사 길이다. 스틱에 의지해 보지만 무릎이 고생하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의 체력차가 커 선두와 후미가 점점 많이 벌어진다. 선두는 산악대장 유재연선생님이 맡고 뒤에는 내가 따라가면서 Sherpa 자야와 총무 강명구선생님에게 가는 도중에 마을에서 닭을 네 마리 사서 저녁식사로 닭볶음탕을 하도록 주문하고 천천히 걷는다. 아내가 무릎이 안 좋아 제일 늦게 걷는다. 점심에 만난 한국인 여행자가 먼저 출발했는데 우리와 만나서 함께 걷는다. 인도를 여행하고 오는 중이라는 아가씨(9일 아침 한국의 어머니 병환이 심하다는 연락을 받고 여행을 포기한다며 초콜릿과 간식을 우리에게 넘겨주고 하산함)와 인도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르니까 힘이 덜 드는 듯했다. 인도의 고아에 있는 별장을 무료로 소개할 수 있다면서 서울 가면 연락하자고 하며 메일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간간이 보이는 Annapurna 남봉의 설산이 피로를 덜어주기도 했다. 6시경 Meera lodge에 모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마치고 다행히 온수사워를 했다. Trekking 1일 차여서 다들 표정이 밝다. 저녁은 닭 4마리로 만든 닭볶음탕과 Plate rice으로 31명이 포식을 했다. 요리사가 요리를 했지만 요리사는 네팔짱 주방에서 한국요리를 배웠고 자야는 한국에서 음식을 먹어가며 배운 솜씨라 자야가 맛을 낸 것 같다. 한국에서 먹는 닭볶음탕보다 더 맛있는 것은 아침이 변변찮고 점심은 볶음밥 한 그릇으로 때우고 종일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Annapurna 남봉의 일몰을 보면서 8시간의 여정을 정리하고 내일의 일정을 소개한다.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반길 것을 기대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 몇몇 회원들은 오리온좌, 삼태성 등 많은 별들을 보았단다.
1월 9일 토요일:Ulleri~Ghorapani
화창한 날씨 속에 아침은 티베트 전통빵(Gurung bread)과 계란부침개, 꿀, 그리고 짜이를 먹고 식수를 채운 후 조별로 물 정수제를 나누어 준 다음 8시에 출발했다. 처음은 어제의 계단 경사길이 이어지다가 산책로와 같은 길이 나타났다. 계곡으로 이어진 길에는 물소리가 정겹게 함께 가기도 하고, 주변은 열대림처럼 많은 이끼류가 자라는 나무숲을 지나가기도 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전망이 좋은 곳에는 Lodge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쉬엄쉬엄 쉬어가기가 편리하다. 체력에 따라 끼리끼리 어울려 오르면서 쉬어가다가 Banthanti(2,300m)에서 다함께 Tea를 한 잔씩하고 마차푸차레(Machhapuchhre) 설산의 눈을 보면서 또 오른다. 도중에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속도가 빨라 Ghorapani까지 간다는 전갈이 왔다. 뒤처진 회원들이 좀 힘들기는 했지만 선두의 속도에도 협조를 해야 하기에 계속 올랐다. 13:30경 Ghorapani 숙소(2,860m)에 도착하여 라면을 먹고 사워 및 세탁을 했다. 온수가 아니면 세탁을 하기가 곤란하다. 음지에는 얼음이 깔려있고 식당에는 난로를 피워 놓았다. 숙소 앞에는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2m)와 Annapurna 남봉(7,220m)이 병풍처럼 보인다. 사워 및 세탁을 마친 후 15:30 Poonhill(3,210m) 전망대를 향해 출발했다. 오전에 피로했던 다리가 풀린 듯하더니 또 힘이 들고 걸음이 느려진다. 아마 3,000m를 넘어가면서 고소증세의 일종이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3,000m를 넘어가면 고소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데 걱정이다. 다른 회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자신과 남을 걱정할 것이다. 만약 고소증이 나타나 하산하게 될 때는 같은 방 동료가 하산하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16:50 경 푼힐 전망대에 오르니 주변이 확 트인 것이 전망이 절경이다. 북쪽으로는 6,000m 이상의 높은 산에 눈이 쌓인 설산들이 있고, 남쪽으로는 3,000m 이하의 저산들이 있는 중간에 전망대가 있었다. 4년 전에 왔을 때는 날씨가 흐려서 감상을 할 수가 없었는데 선명한 날씨 속에 시야가 좋아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18명이지만 여러 그룹별로 사진을 촬영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학교팀, 여성팀, 대학팀, 수학과팀 등 배경이 좋으니까 팀이 잘 만들어진다. 좀 쌀쌀하기는 했지만 고산에서의 감명 깊은 일몰까지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헤드랜턴을 사용하였다. 저녁은 네팔의 전통식사인 달밧(네팔 정식-쌀밥, 익힌 콩과 소스, 고기 등을 손으로 섞어 먹음)을 먹었다. 옆의 테이블 네팔인들은 왁자지껄하며 잘 먹는데 우리 팀은 영 아니다. 스푼을 사용하여 먹어서인지 맛이 별로란다. 나도 다 먹기는 했지만 추천할 만한 맛은 아니다. 내일의 일정을 협의한 후 자유 시간에 맥주를 한잔 하고 온수를 한 통씩 담아 침실로 향하는데 일부 회원들이 고소증세가 나타났다. 침실에서는 설산의 눈빛이 방을 밝혀서 밤새 눈빛과 함께 꿈을 꾸었다.
1월 10일(일요일):Ghorapani~Tadapani
눈빛이 스러지고 햇빛 속에 일어나 다시 한 번 설산을 감상하는데 기압이 낮아 이뇨작용이 덜 되는지 화장실이 가고 싶지 않다. 식사 후에 간단한 협조사항과 함께 고소증세가 있는 회원은 처방약을 먹도록 전달하고, 678(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에 맞춰 아침을 어제처럼 먹고 출발했다. 숙소 뒤편으로 능선을 따라 3,300m 고지를 오른다. 한참 오르다 보니 타르초(불교경전을 인쇄한 정사각형의 오색 천을 긴 줄에 줄줄이 이어달은 것으로 만국기 같은 형태로 걸어 놓는다. 히말라야의 산언덕이나 산간마을의 어귀에서 볼 수 있다)가 있어 함께 쉬었다. 뒤로는 멀리 어제 보았던 푼힐 전망대가 햇빛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능선을 오르는 길 양쪽으로는 네팔의 국화 Lali Gurans(꽃은 일반적으로 붉은 색이지만, 분홍색, 흰색도 있음, 해발 4천 미터 전후해서 자라는 히말라야 고산의 대표적 봄꽃이다. 고산으로 추운 날씨임에도 잎은 상록수이다) 나무들이 울창하다. 겨울이라 꽃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Lodge에서 숙식비를 계산하고 뒤늦게 출발한 강 총무와 자야가 앞지르며 속도를 낸다. 왼쪽으로는 계속 Annapurna 남봉이 보여 설산과 함께 함이 마음을 즐겁게 했다. 3,300m의 능선을 넘어 Deurali lodge(2,990m)에서 다 함께 휴식을 한 후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좁은 계곡 사이의 평평한 양지에는 가옥이 몇 채 있고 그 주변에는 채소밭이 잘 가꾸어져 있다. 신기하게 계곡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스프링클러를 작동하고 있다. 이끼류가 잔뜩 달린 울창한 열대림과 같은 숲에는 몇 아름드리가 되는 나무들이 간간이 있고 어떤 나무는 쓰러져 계곡의 다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우리의 길을 방해했다. 내리막이 끝나고 오르막이 시작되어 힘들어할 때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Banthanti(2,520m) Lodge에 12시쯤 도착했다. 이 Lodge는 Annapurna 남봉과 마차푸차레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수려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햇볕이 따가워 그늘에 들어가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쉬는 사람, 머리를 감는 사람, 배경이 좋아 사진을 찍는 사람 등 다양했다. 집 옆에 채소(상추)가 있어서 요리사 로산에게 겉절이를 부탁했다. 볶음밥이 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길어 네팔 노래를 듣기로 했다. 몇 명의 Porter가 우리 앞에서 노래와 춤을 선사하고 나머지 Porter들이 합창하는데 흥겨움이 대단해 우리의 여독이 풀렸다. 노래는 ‘레삼피리리(Resam Phiriri)’였는데 노래가 좋아 다 함께 배우게 되었다. 가사 내용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로 한국의 아리랑처럼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가사가 낯설어 후렴인 ‘우레라 뎅끼 다라마 보씀 레삼피리리’만 귀에 들어오고 다른 가사는 다 그게 그것 같았다. 흥이 고조되어 땀을 흘리며 노래와 춤을 계속하는 Porter에게 회원들이 준비해 온 학용품과 간식을 건네며 감사의 표시를 한다.
점심은 볶음밥에 상추 겉절이, 그리고 고추짱아지(조항열선생님이 회원 전체가 나누어 먹을 만큼 많은 양을 비닐 포장해 가지고 왔음)로 개운하게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또 선발대는 내리막 계곡 길로 출발한다. 오늘은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은 정도의 길이다. 산 경사지형을 이용하여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만들어진 Trekking 길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으라는 지시인 듯했다. 체력의 넘침이나 부족함이 필요 없는 인내를 가진 지구력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계곡물을 건너 오르막길을 한 참이나 오르며 식곤증이 가실 때쯤인 3시경 Tadapani(2,630m)에 있는 Panorama point hotel에 후미 팀이 도착했다. 선두 팀은 따사로운 햇빛 속에 세탁, 사워, 침낭 말리기(빌린 것은 습기가 차 눅눅하고 냄새가 많이 났는데 그동안 말릴 새가 없었음)를 하고 있었다. 숙소 앞으로는 마차푸차레와 Chomrong마을의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숙소 앞뜰에 앉아 쉬면서 설산 위로 비추는 석양빛의 쇼를 감상하면서 간이 난로 두 개에 장작을 피웠다.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담소를 하다가 369게임을 하기도 하고 세탁물을 말리기도 했다.
저녁은 가지고 간 라면에 굵은 국수(수제비)를 넣고 양배추를 삶아 먹었다. 일부 회원이 고소증이 나타나 술을 삼가고, 찬물로 머리감는 것도 피하도록 했다. 이 집의 식당은 난로가 없고 식탁 밑에 화로를 넣고 식탁보로 덮어놓아 식탁보 밑으로 무릎을 넣으면 온기를 느끼도록 해 식사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이 마을 민속공연단이 식당으로 찾아와 노래와 춤으로 약 1시간 동안 우리를 흥겹게 했다. 노래는 단조로운 편으로 한국의 ‘쾌지나 칭칭’처럼 계속 후렴이 반복되었다. 춤을 추는 아가씨들은 우리 회원들을 번갈아 나오라고 하며 함께 춤을 춘다. 몇 명의 춤을 잘 추는 회원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Porter들도 함께 흥을 즐기는 사이 마을 아주머니들은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면서 모금을 하고 회원들이 작은 돈이나마 쟁반 위에 내놓는다. 이 공연으로 받은 돈은 마을을 위해서 사용한단다. 공연이 끝나고 섭섭하지 않을 만큼의 공연료를 드린 후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전기가 없어 촛불 속에 일정을 정리하고 내일의 일출을 기대하며 피곤한 다리를 침낭 속으로 옮겼다.
1월 11일(월): Tadapani~Sinuwa
오늘의 일정은 Chomrong까지 가는 단순한 길이었으나 Sinuwa까지 큰 계곡 두 개를 건너는 W자 형태의 여정으로 바뀌었다. ABC에서 1박을 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한 것이다. 6시 반 식사로 pan cake와 짜이를 먹고 일출을 감상했다. 멀리 마차푸차레에서 뜨는 일출이 아쉽기는 했지만 선명한 일출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상의 많은 여행자들은 매일 뜨고 지는 일출과 일몰에도 감명과 추억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8시 Sinuwa로 출발하는데 독일에서 온 여교사(안식년으로 6개월 째 여행 중)들이 인사를 한다. 친구와 반년씩 여행을 할 수 있는 독일의 정서와 여유가 부러웠다. Chomrong까지는 해발 약 2,000m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약 2,200m까지 올라가는 길이다. 한 시간쯤 내려가서 전망이 좋은 어떤 숙소 정원에서 다 함께 쉬었다. 정원의 한가운데는 Porter들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단을 만들어 놓았다. 멀지 않은 곳에 Chomrong이 보인다. 청정지역이라 더 가까이 보일지도 모른다. 안개가 걷히고 계곡에도 아침이 온다. 다시 출발해 하산하는 유채와 사탕수수, 밀밭이 있는 마을길에서 초등학생들 몇 명이 등교를 하기 위해 우리를 따라 함께 나선다. 코를 흘리며 얼굴이 구리 빛으로 그을린 한국 어린이 네 살 정도로 보이는 나약한 작은 어린이가 가방이 힘겨운 듯 통통 걸음으로 언니를 따라 비탈길을 내려간다. 신발은 크고 흙먼지가 누런 운동화와 긴 스타킹에 뽀얗게 앉는다. 어떤 회원들은 사탕, 초콜릿, 볼펜을 쥐어주며 측은해한다. 학교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왕복 등교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열악한 교육환경에서도 교육열을 가진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첫 번째 Annapurna 남봉에서 내려오는 Kyumun 천 계곡의 현수교 철다리를 건너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올라 산 중턱을 따라가는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양지바른 경사지에는 물소, 양,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집 처마에 매달린 요람의 아이를 열심히 흔드는 아비도 보인다. 건너편 경사지에는 계단식 경지가 잘 형성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인류가 살아오면서 개간을 한 노고의 결실이고 유산이다.
Sherpa가 내려 올 때 이곳에서 양을 사야 한다고 해 한 마리 부탁해 놓으라고 했다. 후미조가 Chomrong(2,170m)에 도착했을 때는 선두팀이 점심을 주문해 놓고 있었다. 식사는 늘 1시간 정도 걸려야 나오기 때문이다. 쿰부(네팔짱 양아들)가 레몬주스를 한 잔씩 돌린다. 이곳의 계곡물로 만든 주스지만 향이 상큼했다. 점심으로 볶음밥과 양배추 삶은 것을 곁들여 먹고 또 하나의 계곡을 내려간다. Sinuwa가 바로 앞에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도 약 300m를 내려갔다가 약 300m를 올라가야 하는 깊은 계곡에 Chomrong천이 있다. Chomrong은 마을이 커서 학교와 보건소 상점 등이 있었다. 여기까지 조랑말 상단이 다녀서 공급이 충분해서인지, 한국 Trekker가 많아서인지 숙소에 한국어로 닭볶음탕, 백숙, 김치볶음밥 등이라는 간판이 몇 군데 눈에 띈다. 마을길은 돌로 된 계단길이 대부분이었고 길을 따라 물이 흐르기도 하고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 저 아래 보인다.
Chomrong천에서 탁족을 하는 여유로움을 뒤로하고 하교하는 학생들과 함께 오르는 산길의 어느 집에는 3~4세 정도의 어린이들이 모여 지나가는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늘 지나가는 Trekker들에게서 간식으로 준비해 온 사탕과 초콜릿을 받아먹었던 학습효과 때문에 길목을 지키고 놀고 있는 것 같다.
4시경 Sinuwa(2,340m)에 후미조가 도착하여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온수로 사워와 세탁을 마친 후 이번에는 일몰을 아쉬워한다. 저녁은 4마리의 닭으로 닭도리탕을 만든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닭값이 비싸고 닭이 작다. 닭은 끓인 물로 튀겨서 털을 뽑는 것이 아니라 불로 털을 태운다. 물을 끓이는 불이면 태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닭이 충분하지 못해 닭의 부산물을 손질해 먹는 Porter들이 측은하긴 했다. 아쉬운 대로 영양보충을 하고 회의를 통해 ABC에서 1박을 하기로 일정을 확정 변경했다. 그리고 또한 고소증이 나타나지 않도록 걸음의 속도를 조절하고, 강명구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약을 전 회원에게 나누어 주면서 복용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일부 회원들이 네팔 소주를 맛보며 담소를 나눈 뒤에 연장자는 아래층(밤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편을 조금이라고 덜기 위함)에 나머지는 2층에서 피곤함을 달랬다.
1월 12일 화요일: Sinuwa~Deurali
오늘은 Sinuwa(2,340m)―Khudihar(2,540m)―Bamboo(2,340m)―Doban(2,510m)―Himalaya hotel(2,870m)―Hinku(3,170m)―Deurali(3,230m)까지의 여정이다. 7시 라면과 죽으로 아침을 마치고 Sherpa 자야가 지금부터는 자연마을이 없고, Trekker들을 위한 Guest house만 있는 길이라 길이 안 좋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7:30 출발한다. Sinuwa 이상 지역은 옛날에 야크를 방목하는 사람들이 여름에만 살던 방목 지역이었으나 경제논리로 지금은 숙식을 제공하는 숙소로 업종을 변경했단다.
함께 출발한 길은 언덕을 넘어 능선을 돌아서면서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바위 위로 난 길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Porter들은 25kg쯤 되는 Cargo bag을 메고 신발이 허름한데도 반은 뛰어서 간다. 어릴 때 먼 산에서 나무(화목)를 지게에 지고 비탈길을 힘들게 내려오던 기억이 난다. 연료가 나무이던 시절 농어촌 청소년들은 화목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네팔인들은 Porter가 되기 위해 Sherpa에게 잘 보여야 한단다. 잘 보여야 한 번이라도 더 Porter로 선택이 된단다. 자야의 Porter들은 친인척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를 담당한 Porter는 중학교를 마친 스무살이 안 된 Porter였는데 이번이 두 번째란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 무거운 짐을 내 배낭에 조금 더 짐을 넣었다. 그리고 가지고 간(손톱깎이, 헌 옷, 소형라디오, 구형 헤드랜턴-무거운 것은 나중에 줌)을 주며 격려해서인지 잘 적응하고 있었다. Annapurnap서 내려오는 주하천인 Modi천을 오른편에 끼고 Bamboo를 지날 때는 많은 대나무들이 있었고 소수력 발전소가 있어 전기가 풍부했다. 하산할 때 이곳에서 묵기로 해 온수 사워가 기대된다. 오르내리기를 두 번 하고 난 다음 Doban에 도착했다. 오늘 점심은 볶음밥이었는데 반찬 하나 없이 달랑 볶음밥 한 접시만 주니까 입맛을 다시기가 다들 힘들은 표정이다. 체력은 많이 소진되고 입이 깔깔하고 각자 가지고 온 반찬(김, 깻잎, 멸치 볶음, 참치 등)을 꺼내서 나누어 먹는다.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더 많은 반찬을 가지고 왔다. 다시 출발해 오르막 길을 통과할 때 약수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해 자야가 가리키는 약수로 모두들 목을 축였다. 빙하가 깎아낸 U자은 절벽에 수많은 폭포들이 마치 흰색실로 수를 놓은 것 같이 보였다. 점점 나무가 적어지면서 초원이 시작된다. 여름에만 풀이 무성한 고산초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거대한 빙하에 의해 빙식 된 산악지형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어떤 힘을 지닌 것 같다.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면서는 그늘이 지면서 골짜기 바람이 일기도 한다. Deurali(3,230m)에는 17:30 경 도착했다. 5일째 걸으니 발이 서운하다고 할 만한데 말이 없다. Deurali는 방이 모자라 3인 1실로 배정했다. 여성이 5명이다 보니 혼성방이 생겼다. 전기가 없어 촛불로 불을 밝힌다. 해가 지면서 기온이 내려가 춥다. 그래도 세수와 발을 닦아야 한다. 물티슈로 해결하는 회원도 있다. 저녁은 쌀밥과 야채국에 라면 수프 넣은 국과 함께 먹었더니 입맛이 살아나는 것 같다. 모두가 같은 반응이다. 라면의 위대함이라고나 할까? 내일도 이렇게 먹자고 한다. 다른 메뉴는 비싼데 잘 되었다. 식사 후에 식탁 밑에 난로를 피우기 위해 1인당 80루피씩을 내란다. 등짐으로 여기까지 운반해 온 유류 값을 생각하면 비싸진 않지만 피곤해 피로를 풀 겸 내일을 기대하며 온수통에 온수를 담아 온수의 온기로 침낭을 덮여 잠을 청한다.
1월 13일 수요일: Deurali~ABC
6일째 걷는다. 기온이 낮아 잠을 제대로 못 잔 회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연장자 중에는 이남표선생님이 고소증인지 속이 불편하단다. 아침을 대충 먹고 8시경 출발했다. 오늘도 약 1,000m를 올라가야 한다. Machhapuchre Base Camp(3,700m))까지 오르막을 오르는 길에 다들 힘이 없다. 고산이라 산소가 희박해져서 그렇단다. 개인차는 있지만 고소증이 나타나는 것 같다. 계곡의 양 옆으로는 수천m의 산이 솟아있고 그 산의 눈이 녹아내려 수백 m의 작은 물줄기의 폭포가 빙하의 절벽으로 떨어진다. 정말 장관이다. 멀리 산악빙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곳곳에 U자곡의 흔적이 잘 나타난다. 수목이 자랄 수 없는 고산초원이 계속된다. 야크(Yak)가 있어야 할 곳에 야크가 없다. 야크도 경제의 논리에 밀려 방목을 하지 않는다고 해 회원들에게 야크를 못 보여드려 아쉬웠다. Machhapuchre B.C 는 Annapurna와 마차푸차레 사이 계곡의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경관이 훌륭했다. 시계방향으로 Gangapurna Himal(7,454m), Annapurna Ⅲ(7,555m), Machhapuchhre(6,993m), Hiunchuli(6,441m), Annapurna south(7,220m), Baraha Shikhar(7,647m), Annapurna Ⅰ(8,091m) 봉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위치해 있다. 경관이 좋아서인지 숙소에는 몇몇 사람들이 묵고 있는 듯 보였다. 여기 숙소(Shankar guest house)에서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 힘을 차려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ABC가 빤히 보였지만 걸음이 쉽지 않았다.
빙하가 할퀴고 간 계곡으로 난 길에는 바위들이 거칠게 잘리어 널려 있고, 흙먼지 아래에는 얼음이 깔려있다. 골바람이 뒤에서 불어 마치 밀어주는 듯해 걷기에는 편리했다. 자야의 말로는 수년 전에도 이곳은 눈이 덮여 있어서 아이젠이 없으면 못 올라왔단다. 지구의 온난화가 빨리 진행되어 눈이 녹았다니 큰일이다. 우린 아이젠을 Pokhara 숙소에 두고 왔다.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가 걱정된다. ABC입구 환영 게시판에서 사진을 찍고 다리가 천근만근이지만 힘을 내 15시 30분쯤 후미 조는 ABC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이 얼싸안으며 무사히 도착함을 축하한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회원도 있다. 6일간의 산행이지만 목적 달성에 취해 마음으로는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다. 4,130m 높이에 만족감이 안 찬 유재연대장과 강명구총무는 Annapurna south를 향해 더 올라가고 있다. 고산 등정을 하는 산악인들이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룽다와 타르초가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나도 조금 더 올라가 보았다. 능선에는 대부분 결빙으로 날카롭게 깨진 돌과 눈이 쌓여있어 걷기가 불편했고, 계곡 아래에는 대형 공사장처럼 빙하가 운반해 온 모래와 자갈들이 쌓여 있다. 과거에는 빙하였을 텐데 빙하가 녹고 그 자리에 모래와 자갈이 쌓인 것이다. 그 위로는 거대한 빙하가 Annapurna에서 내려오고 있다. 지형에 관한 이야기는 지형학 박사인 한태흥회원이 설명해 주어서 같은 전공자이지만 더 실감이 났다. 날씨가 흐려서 Annapurna Ⅰ봉을 못 보았다. 기온이 내려가며 바람이 산바람으로 바뀌어 누런 모래 바람이 우리에게로 불어 내려온다. 올라가던 유대장과 강총무도 하산한다. 둘이는 4,500m 정도까지 오른 것 같다. 함께 내려와 방을 배정한다. 오늘은 4인 1실도 있다. 숙소가 한 집 밖에 영업을 안 한다. 다른 집들은 비수기여서 문을 닫고 내려갔단다. 저녁은 모처럼 회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피자, 감자 soup과 밥, Pan cake 등 메뉴를 선택하여 먹게 했다. 그간에 아껴두었던 반찬과 간식 등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 후 모든 회원들이 소감을 한 마디씩 발표하였다. 대부분 18명 전원이 낙오자 없이 목적지에 도착함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이 아닌 다른 참가자 중에 산에 자주가지 않는 선생님은 더할 나위 없이 성취감에 젖어 긴 소감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무모하게 시작한 배낭여행의 형태지만 지금까지는 불만 없이 잘 진행됨에 감사하며 회의를 마쳤다. 역시 촛불과 Head Lantern 빛 아래에서 잠자리를 하고 온수 통을 침낭 속을 넣어두고 양치를 하는데 물이 차서 이가 시리다. 4,000m가 넘는 고지대라 오늘은 옷을 다 입고 자야 할 것 같다. 그동안은 별로 춥지 않았다. 4년 전 Thorung La Pass(5,416m) 갔을 때 추워서 이번에는 준비를 많이 한 탓일 것이다. 화장실의 디딤돌 위에는 얼음이 얹혀있다. 각 방에 밤에 주의할 것을 부탁하고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아쉬워하며 고산에서 신의 품속에 안긴다.
1월 14일 목요일:ABC~Bamboo
간밤에 ABC에서의 단잠을 축복하는 눈이 약 3cm정도 소리 없이 내렸다. 주변이 온통 흰색의 천을 덮어놓은 듯하고 거장의 손에 의해 그려진 수묵화처럼 보인다. 마차푸차레 쪽에서 해가 뜨면서 Annapurna Ⅰ봉이 금빛으로 물들어 수채화로 변하며 날은 점점 밝아왔다. 날씨가 맑아 웅장한 빙하와 Annapurna Ⅰ봉이 잘 보인다. 부지런한 회원은 아침 산책을 하며 열심히 발자국을 남기면서 셔터를 눌러댄다.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어 내려오면서 골짜기를 조각(빙식)하고 녹으면서 하천이 생성됨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살아있는 교과서 같았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회원들의 얼굴이 부어 10살씩은 젊어 보였다. 고산이라 이뇨작용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뇨제를 먹었어도 체질에 따라 달라 차이가 있었다. 고소증세도 두통, 소화불량, 졸림 등 제 각각 나타났다. 전혀 느낌이 없는 회원도 있다. 회원들의 Camera를 모아 ABC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Sherpa 자야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여러 회원들의 Camera마다 창의 범위가 달라 거리와 각도를 잡기 위해 앞뒤로 오가며 옆으로 눕고 엎드리고 앉아 찍는 것이 많이 찍어본 경험이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Sherpa를 잘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으로 감자국과 밥을 먹고 8:50 경 하산하기 시작했다. 되돌아오는 길이 아쉬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올라올 때와 같은 경관인데도 사진을 또 찍는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Machhapuchre , Deurali를 지나 점심은 Himalaya hotel lodge에서 라면과 밥을 곁들여 먹었다. 라면은 1인당 5개씩 신라면으로 가지고 와서 아직 여유가 있다. 라면, 밑반찬을 먹을 때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연장자의 배낭에 있는 것부터 소비했고, 회비를 거출할 때에도 부담(분실 위험)을 덜어드리기 위해 연장자의 돈을 먼저 사용했다. 내려오는 길은 중력의 힘과 가벼워지는 배낭, 하산한다는 마음이 작용한 탓인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된다. 선두와 후미가 크게 벌어지지도 않고 함께 움직인다. Doban을 지나 17:00경 Bamboo(2,340m)에 도착했다. 고도를 1,800m나 내려오니 한결 몸이 부드러워진 것 같고 긴장이 풀린다. 온수에 사워를 하고 방도 2인 1실로 배정했다. 저녁은 볶음밥과 찐 감자를 고추장(오기권선생님 지참)과 함께 잘 먹었다. 식사 후 맥주를 한 잔씩 하며 그간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고소증에 대한 걱정이 해결되니까 다른 걱정들을 한다. 한국 음식 이야기를 하며 입으로 요리를 한다. 입맛이 살아나 먹고 싶은 것이 많아졌나 보다. 양쪽 경사면에 걸린 폭포의 단순히 반복되는 난타 공연 속에 잠이 언제 왔는지 모른다.
1월 15일 금요일:뱀부~지누단다
오늘은 M자형의 하산을 해야 한다. Bamboo(2,340m)―Khudi har(2,540m)―Sinuwa(2,340)―Chomrong 천(1,950m)―Chomrong(2,170m)―Jhinu Danda(1,780m)까지 거리는 어제보다 짧은데 기복이 심해 힘들 것 같다. 8시 Bamboo를 출발하여 고산에 사는 흰 원숭이를 만남김에 쉬고, 네팔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쉬였으나 체력이 소진되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언제 이런 길을 왔는지 새롭고 힘이 든다. 한 여성이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는다. 어제부터 좀 나쁘다고 하더니 오늘은 자주 쉬면서 속도를 못 낸다. 후미를 맡은 책임으로 배낭을 받아 내 배낭 위에 겹쳐 메고 함께 간다.
Sinuwa를 지날 때 대전에서 온 10명의 단체는 ‘Nepal go tour’ 여행사를 통해 올라가고 있는데 Porter가 Cargo bag 2개씩을 메고 올라간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현지 여행사의 무리수인 것 같다. Porter들도 보호하고 Trekker들도 즐거워야 할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회원 한 분은 여행비가 얼마인지를 묻지만 대답이 없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항공료, 패키지 여행비를 묻는 것은 항공편과 호텔, 옵션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대답하면 어느 한편의 마음만 상할 뿐이다. 좀 더 친숙해진 뒤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도 Trekking 도중 프랑스, 아르헨티나, 중국, 미국, 캐나다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한국인이 가장 많다. 특히 젊은 배낭여행자가 대부분인데 국가 경제가 성장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일거리를 찾아올 때 한국은 한층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Chomrong까지 약 5시간이 걸렸다. 점심이 늦어져 허기가 진다. 올라갈 때 들렸던 Heaven View Lodge에서 찐 감자로 점심을 해결했다.
Chomrong에서 Jhinu Danda(1,780m)로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떨어진다고 해야 할 거었다. 짧은 거리에 고도가 400m나 낮아지니 상상을 해 보시라. 발 앞꿈치로 체중이 실려 발가락이 아파온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져 내려오는 길에 황토 먼지가 인다. 15:30 경 지누단다 Namaste Hotel에 도착했다. 걸은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느라고 무릎이 고생했다. 방을 배정하고 모두 목욕용품을 챙겨 온천을 찾아 내려간다. 100여 m를 내려갔다가 올라오면 목욕한 효과가 없다더니 산길은 비스듬히 많이 내려간다. 온천은 노천 온천으로 남녀 탕이 구분이 있었지만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했고, 수온을 체온과 비슷했다. 밀린 세탁과 때를 닦으며 피로를 풀었다. 탕 속에서 고산 설산을 바라보았으면 좋으련만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Trekking의 마지막 밤이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양 한 마리와 닭 4마리, 그리고 양주는 회원들이 찬조(Trekking에 초대함에 감사, 정년 퇴임기념, 부부 동반 만족 등 1인당 25~50불씩 찬조한 700불)한 돈으로 마련을 했다. 목욕을 하는 사이 셀파와 포터들이 양 한 마리와 닭 4마리로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강명구선생님은 엄나무(주변에 많이 있음)를 넣도록 알려줘 냄새가 구수한 요리가 되었다. 자축 파티는 식당에 양고기와 닭고기를 가득 차려놓고 양주, 맥주와 함께 31명이 모여 시작했다. 오래 걷고 목욕을 한 후라 음식이 잘 들어간다. 서로에게 술을 권하면서 그간 고생한 보람을 만끽한다. 노래와 춤이 시작되었다
Porter들이 네팔 민요를 부르자 주인장까지 나서서 함께 흥을 돋우다가 양주를 싸게 팔테니 더 마시란다. 우리들은 못 이기는 체 더 먹었다. 회원 중에는 평소 술이 취하지 않는데 여기서 처음 취한 모습을 보니 흥을 아는 사람 같아 보이고 나까지 행복했다. 밤이 늦어 다른 Trekker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숙소 뒤편의 식당 앞 정원으로 장소를 옮겨 모닥불을 놓고 여흥을 연장했다. 흘러간 옛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회원, 대학 시절의 캠프 송을 부르며 추억에 젖는 회원, 같은 동문끼리 합창을 하는 회원 등 장작이 타들어가는 만큼 맥주가 모자랐다. 별을 보며 부르는 노래는 뭐니 뭐니 해도 윤형주의 ‘저 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이 최고인 것 같다. 모닥불이 사그라지고 별이 더욱 빛 날 때 하나 둘 숙소로 모습을 감추었고, 남은 회원들의 속삭임이 얼마동안 계속되었다. 별자리를 하나씩 찾아가면서......,
1월 16일 토요일: 지누단다~Naya Pul
오늘은 도상 거리로 18km를 걸어야 한다. 도상거리이므로 오르막과 내리막, 하천 건너기 등 실제거리는 훨씬 먼 거리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8:30경 출발하여 Kyumun 천을 건너기 위해 하산한다. 자야는 최성병선생님이 Bamboo에 놓고 온 물건을 찾으러 M자형으로 올라갔다. Porter 중 대장이 앞장서며 함께 하산하는데 갈림길이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Udi를 지나 New bridge를 지나면서 길은 하천을 따라간다. 뒤에서는 Annapurna와 히운출리, 마차푸차레가 잘 가라고 손짓하며 또 오라고 하는 것 같다. Syaull Bazaar에서 삶은 감자로 점심을 먹었다. 감자를 삶아 한 접시와 오렌지 주스 한 잔씩 주는데 흙도 제대로 닦지 않았지만 배가 고파 껍질을 까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중간중간 도로를 닦아놓았다. 차는 다닐 수 없지만 도로 계획이 있어 공사를 진행함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은 Trekker들이 오고 가며 숙식비를 지불하지만 차가 다니면 그냥 통과하고 말 텐데 말이다. 그래도 지역 발전을 위해 도로는 건설되어야 할 것 같다. 평탄하고 지루한 우마차 길을 걸어 Naya Pul에는 16:30경 도착했다. 자야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끼리 예약된 버스를 타고 Pokhara로 가서 짐을 내리자마자 한식당 ‘산마루’에서 다 함께 김치찌개백반과 반찬을 실컷 먹고 Porter들을 보냈다. 숙소에 와서 일부 방을 재배정하고, 내일 자유여행을 위해 2,000루피씩 나누어 드린 후 하루를 마감했다. 9일간의 Trekking이 아무 사고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회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면서 잠이 든다.
5. Pokhara에서 방콕
Pokhara는 휴양도시이지만 도시가 좁아 갈 곳이 많지 않다. 17일과 18일은 Pokhara 관광을 했다. 단체(18명)로 움직이기 힘들어 자유관광을 하기로 했다. 17일 용돈을 충분히 나누어 드린 후 갈만 한 몇 곳을 안내하고, 저녁때 민속쇼와 정찬 시간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처음이라 적응이 잘 안 되어 결국 호수 변에 모여 보트를 함께 타고 페와 호수에 있는 섬으로 관광을 다녀온 후 점심을 먹고 박물관(International Mountain Museum) 관람, 쇼핑, 휴식 등을 즐겼다.
저녁은 미리 예약한 옛 국왕의 별장지인 Fewa Park Restaurant에서 민속공연을 보며 기름진 음식과 맥주를 마셨다. 18일 대부분 회원들은 새벽 Sarangkot(1,592m)로 일출을 보러 갔다.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남봉과 1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2, 3, 4봉 등이 황금빛으로 바뀌는 여명과 일출을 보았다. 아침 식사 후에 공항으로 이동하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난 자야에게 등산화를 벗어주었고, 아내는 다운코트를 자야 딸 주라고 벗어 주었다. 그동안 수고한 자야에게도 충분한 팁을 주었다. 슬리퍼차림으로 기내에 올라올 때부터 이륙할 때까지 공항청사 옥상에서 자야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카트만두로 돌아갈 때 국내선 항공을 이용한 것은 갈 때(전세 버스) 보다 돌아올 때 편해야 하기 때문에 계획을 그렇게 잡은 것이다. 히말라야 설산을 왼쪽에 보여주며 비행한 항공기는 40여 분만에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Pick up 나온 중형버스를 타고 네팔짱에서 맛있는 한식으로 점심을 각자 먹게 했다. 오늘은 호텔도 난방이 가능한 좋은 호텔(마낭호텔)이다. 오후에는 쇼핑을 하도록 용돈(4,000루피)을 나누어 드리고 조부회장과 함께 쿰부를 데리고 네팔항공사에 가서 결항(한국에서 예약 확정된 항공편이 승객이 적어서 결항하는 것 같다고 함)하는 항공권을 타이 항공으로 변경(지누단다에 있을 때 한국에서 연락이 와서 다른 회원 모르게 변경예약을 함)하여 표를 받는데 3시간이 소요되었다. 저녁 식사는 각자 타멜 거리에서 현지 음식을 즐겼다. 19일은 오전에 단체로 시내 관광에 나섰다. 파슈파티나트 사원(갠지스 강 상류의 화장터가 있는 사원으로 유명함), 보우더나트 사원(티베트불교 사원), 스와얌부나트 사원(몽키 사원이라고도 하며, 힌두교와 불교의 탑이 한 사원 안에 있음)을 관광하였다.
오후는 자유관광을 하고 저녁식사는 단체로 하면서 1차 결산 보고를 한 후 또 1,000루피씩 용돈으로 드리고 그간의 살림을 잘한 강명구총무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20일 오전은 쇼핑을 마무리하고 13:55분 타이항공은 14:30에 이륙한다. 방콕으로 출발한 타이항공에서 좋은 기내식에 감사하며 다음 여행을 상상했다. 항공기에는 말레이시아에 근로노동자로 가는 네팔인들이 많다. 방콕에 도착하여 기본 일정 팀(강명구선생님 조장)은 대한 항공을 타고 인천으로 가고, 나머지는 예약된 봉고를 타고 카오산로드(배낭여행자 거리)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내일부터 실시되는 조별 배낭여행에 대한 주의사항과 항공권을 나누어 주고 예약된 숙소(Roof Garden Guest house)에 Trekking짐을 장기 보관하고 잠을 청한다. 나머지 각 팀의 여행기와 많은 사진들, 다른 회원의 여행기는 다음 카페(http://cafe.daum.net/moeol)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각 팀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 2월 9일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여행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무사히 다녀왔음에 감사하는 해단식을 가졌다.
6. Trekking 여행 후기
여행이란 가슴이 설레면서 꿈을 실현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출발한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기 전 좋은 생활터전을 찾으러 끝없이 유랑하던 인자가 형성되고 그 인자가 유전되어 여행을 떠나는 것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을 나서면 많은 고생을 한다. 낯선 환경의 음식, 숙소, 교통, 언어, 치안 등 문화 차이에 의한 갈등을 겪는다. 그래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새로운 지역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 일상생활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소득을 안고 왔다. 첫째는 Annapurna라고 하는 8,000m급 설산의 Base Camp(4,130m)까지 고도를 높이는 기록을 경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1,950m)에 오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고소증이 나타나 고생은 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둘째로는 9일 동안 걸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걷고 또 걸으면서 옛날 도보교통 시절 조상들이 발걸음으로만 이동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셋째로는 여행을 17일(기본 일정) 이상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은 5~7일이 좋다고 하고 7일이 넘으면 집 생각이 난다고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이 확인되었다. 넷째로는 배낭여행의 장점과 단점을 체험했다. 예비군동원훈련을 받듯이 가이드를 따라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관광과 쇼핑을 반복하는 Package 여행보다는 자유롭고 여유로움을 즐기면서 우리 중심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우리가 결정(숙소, 교통편, 음식 메뉴, 일정)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섯째로는 여행비가 저렴하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기본 일정(17일) 팀의 여행비는 155만 원(1달러=1,190원)이었다. 여행자 보험, 네팔 비자 fee, 항공료, 모든 일정 숙식 및 교통비와 Permit Fee, 셀파와 포터 그리고 요리사 인건비 및 Tip, 요리를 위한 부식비, 개인 용돈(물값, 간단한 기념품비)을 모두 합쳐 그 정도 들었다. 보통 여행사 Annapurna Base Camp와 Poon hill 전망대 11일짜리 Package여행이 249만 원(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하지만 비자 fee와 셀파와 포터 Tip 그리고 물값 용돈제외)인 것에 비하면 17일간 트래킹과 관광(포카라와 카트만두 시내관광)을 함께 즐기면서 이 정도 비용이면 여행을 할 만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우리나라의 여행 정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나라를 다녀오는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많다. 이것은 급속한 산업발전을 가져온 빨리빨리 근성을 이용한 상품이라고 본다. 여행을 다녀와서 몇 개국을 다녀왔는가를 물어보는 국민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상품을 만든 탓일 것이다. 침구류도 제대로 없이 못 살던 과거의 보상이나, 평소 호텔 이용을 못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의 보상이라도 하듯이 몇 성급 호텔이라 광고하고, 추가 비용(Option)과 Tip 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심리를 이용하여 No Option, No Tip이라고 부축이고, 음식을 잘 못 먹는 식성에 맞게 한식을 준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여행비 과다, 숙소 불편, 음식 맛, 과도한 Tip, 피곤한 Shopping 등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의 안락함과 좋은 숙소, 진수성찬을 고집한다면 국내 여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여행을 하게 되는 학생들은 여행의 가치관을 정립하여 다른 환경, 다른 문화, 다른 음식을 접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고 사고력을 신장하면서 추억을 만들어 삶의 동력이 되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우리나라가 먹고살 수 있는 일거리를 하나씩 찾아온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윗글은 함께 여행했던 조항열선생님이 카페에 올린 기록을 많이 참고하였으며 사진은 회원들의 사진 중에 좋은 것을 발췌하여 실었음을 밝혀두고 기행문을 마친다.
더 자세한 여행기를 보시려면 다음 카페:휘문뫼올산악회(http://cafe.daum.net/moeol)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