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말 세성 아가씨들의 가을 소풍
코로나 19로 사회적 격리 단계가 오르락내리락하며 긴 집콕(방콕)에서 벗어나 여자들이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늘 앞장서는 영은 아씨의 주선으로 날을 잡아 양평으로 가기로 하고 연락을 했나 보다.
전철을 이용해 용문역에서 만나 그간 못 나누었던 안부를 반갑게 나누었다.
천년고찰 용문사를 목적지로 하고 산채전문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굴곡진 삶의 이야기들로 수다를 떨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용문사를 둘러보며 단풍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에서 초등시절로 돌아가 본다. 돌아보니 50년이 넘은 모두가 꿈 많은 소녀시절이었다. 떨어진 은행잎을 아쉬워하며 삶의 기운을 재충전하는 즐거운 나들이었다.
보람된 하루였지만 함께 하지 못한 여자들은 슬픈 사정이 있었다.
1. 일시: 11월 6일 (금)
2. 장소: 용문사
3. 참석자: 희숙, 영은, 옥분, 정화, 향순, 후배 6명
용문역에서 한
산채전문식당에서 한정식으로 점심 식사 및 맑은 이슬로 흥을 돋웠다.
전골과 산채 정식-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다.
사랑할 땐 노소불문 내 나이가 어때서
단풍 나들이에 나선다.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로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된다. 가지는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는 근거는 용문사의 창건 연대와 관련하여 산출하고 있다. 용문사는 649년(신라 진덕여왕 3)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은행나무는 절을 세운 다음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가져다가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 중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써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堂上職牒) 벼슬이 내려졌다 하며, 마을에서는 굉장히 신령 시 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 자리에서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쳤기 때문에 중지하였다는 이야기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살라버렸으나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커다란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 광복, 6·25 전쟁, 4·19, 5·16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楊平 龍門寺 銀杏─]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다른 세성 아씨가 찍은 사진도 올립니다.
이날 정옥의 부군이 세상을 떠났다.
72세로 아직 떠날 나이가 아닌데 불의의 교통사고로 1주일 사경을 헤매다 말 한마디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다 같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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