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라오스 태국 여행

라오스 태국 배낭 여행(씨판돈1)

조인스타 2023. 12. 3. 10:44

2008년 12월 26일

 

씨판돈은 라오스 남부의 사천 개의 섬이란 뜻이다.

  26일 아침은 어제 시장에서 비싸게 산 과일과 삶은 달걀로 대신했다.

돈콩 가는 남부터미날은 꽤 멀었다. 착한 툭툭기사가 5,000낍/인에 간단다. 어제는 10,000낍에 짧은 거리를 왔는데 오늘은 15분 정도 달린다. 요금이 뒤바뀐 것 같다. 터미널은 슬럼지대 같았다. 새로 조성한 터미널 근처에 상인들이 비포장의 광장을 중심으로 늘어서 있는데 건기라 황토먼지가 덮여 온통 황토색이다. 상점은 상품 진열이나 모습이 초라해서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케 하고 도시 개발에서 터미널 이전 후 아무런 시설이 없는 상태였다.

 

버스터미널 입구 상점들과 비포장 황토 광장

트럭을 개조한 생태우(위) 낡은 버스(아래)

   

9:30 생태우는 25,000낍 10:00 버스는 30,000낍 버스를 타기로 하고 짐을 짐칸에 실었다. 간식으로 삶은 땅콩 한 봉지 2,000낍, 식빵 하나 5,000낍 사서 시간을 기다리다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사용료 2,000깁(라오스의 화장실은 대부분 돈을 받는다.         

버스 승객은 별로 없다. 스님과 주민 몇 명 정도 그런데 짐도 싣고 보조의자도 있는 것을 보니 많이 탈 때도 있나보다.  포장된 도로를 잘 달리더니 밖을 계속 주시(손님 더 태우려고)하던 조수가 차를 세운다. 짐칸에 있는 짐이 떨어졌단다. 버스가 후진하여 짐을 가져오는데 우리 배낭이었다. 배낭 커버는 찢어지고 내용물은 확인할 새 없이 출발한다. 말이 통해야 항의 하지 우리말로 불평을 하였더니 중년의 안내양이 웃기만 한다. 또 한참을 가다가 운전대를 조수한테 넘긴다. 우리나라 옛날에 면허를 따기 위해서 조수부터 시작하던 시절과 같다. 불안하긴 했지만 중앙선(중앙선도 잘 보이지 않는다)을 무시하고 잘도 간다. 점심시간에 정차한 곳에서는 승객보다 더 많은 장사꾼이 통로에서 물건을 사라고 아우성이다. 주로 닭꼬치 구이였는데 언제 구운 것인지 깨끗한지가  걱정되어 침만 삼켰다.  메콩 강을 도선으로 건너 돈콩(씨판돈의 제일 큰 섬-씨판은 4,000이란 뜻이고 돈은 섬이다. 그러니까 시판돈은 4,000개의 섬)의 메콩 게스트하우스 앞에 내려준다. 작은 섬이라 게스트하우스를 다 아는 모양이다. 주인장이 캐나다에 난민으로 갔다가 돌아와 동생이름으로 지은 집이라 깨끗하고 메콩 강을 바라볼 수 있는 2층이라 묵기로 했다. 15달러/1박. 늦은  점심을 먹고 유치원을 찾았다. 미국 동서가 로터리 클럽을 통해 교육 사업에 지원을 할 곳을 물색한단다. 유치원은 시설이 엉망이었고 그 옆의 초등학교에선 어린이들이 운동장의 풀을 베고 소똥을 치우느라 왁자지껄하다. 선생님들은 감독하고 아이들은 삽 또는 손으로 소똥을 집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국기하기식 후에 긴 훈화시간을  마치고 4시 10분에 하교한다. 선생님들이 고생이다. 그런데 점심시간에는 점심 먹으러 집에 갔다 온단다.

운동장 청소하는 초등학생 모습

 

여행사에 들려 내일의 패키지 투어를 예약하고  주변의 사찰과 상점들을 둘러보고 메콩 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27일 부지런한 어부들은 새벽에 강에 나갔나보다 이야기 소리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고기가 별로 없나보다. 서로들 실망스러운 듯 무어라고 하면서 그물을 내려놓는다.

그물을 점검하는 어부들

 

 아침은 토스트(어제 산 식빵을 전기코펠에 구운 것)와 양갱 그리고 커피로 해결한다. 마땅히 먹을 게 없었다.  현대 그레이스를 타고 남쪽으로 투어가 시작되었다. 유럽인들 6명과 함께 10명이 출발했다. 어제 건너온 강을 건너는데 어제 타고 온 버스 승무원들이 생태우를 타고 나오는 것이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고장이 났는지 궁금했다.

지붕에 짐을 실은 생태우 

 

얼마간 달리다가 길옆에 섰다. 유럽인이 내린다. 캄보디아를 간단다. 우리나라 책에는 라오스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국경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데 유럽인들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왔나보다. 콘파팽폭포(Khone Phapheng waterfall)는 남미의 이구아수폭포 같았다. 동양의 이구아수라해도 될 것 같다. 물의 양이 건기인데도 많아 우렁찬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린다. 넓이로는 세계 최대라는 정보가 있던데 우기 때는 굉장할 것 같다.  

 Khone Phapheng waterfall

 

폭포를 보고 나서 메콩 강에 사는 돌고래를 보러갔다. 이라와디 돌고래가 메콩 강에 살고 있단다. 지금은 미얀마의 이라와디 강, 라오스와 캄보디아 접경의 메콩 강 민물에 사는 희귀종으로 전 세계를 통틀어 약 150마리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배 위에서는 못보고, 강변 전망대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두 마리가 헤엄쳐 다닌다. 한 마리가 다니기도 하고 때론 네 마리가 숨을 쉬기 위해 머리를 내밀지만 너무 멀어서 사진 촬영은 못했다.

돌고래 전망 언덕

 

다시 말없이 흐르는 강물 위에 몸을 싣고 출발 지점으로 갔다. 점심시간이라 시장했고 강변에는 라오스 아가씨가 스프링롤(월남쌈 같음-야채를 양념에 묻혀 넣고 말음)을 말아서 팔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사서 먹는다. 궁금해서 얻어 먹어보니 맛있었다. 우리도 사서 먹었다. 소스도 향긋하고 맵고 깨끗한지는 몰라도 라오인 들이 즐겨먹는다. 같이 간 동서와 처제(미국 시민권자)는 안 먹는다. 위생적이지 못하단다. 그래서 과일로 대충 먹고 다음을 위해 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돈 콘의 솜파밋(Somphmit) 폭포를 보러간다. 배를 타고 가다보니 많은 방갈로 숙소가 강가에 즐비했고 여행객들은 해먹에 누워 독서를 하거나 오수를 즐기는 것 같았다. 여기에 온 여행객들은 카약, 튜브타기, 낚시, 수영, 자전거타기, 오토바이타기, 재래식으로 고기 잡기, 배타고 섬 순례 등등 놀 거리가 많아 젊은이들의 천국처럼 보였다. 먼저 다녀간 여행선배님들은 이곳을 두고 욕망이 멈춘 곳이라 했을 것 같다.

강변의 방갈로 숙소

 

폭포 가는 방법은 도보, 자전거, 오토바이, 생태우 등 네 가지가 있었는데 2Km 정도라 걷기로 했다. 건기여서 도로는 타이어가 부셔놓은 흙가루가 3~5cm 덮여있다. 샌들 위로 흙가루가 올라오고 햇빛은 강렬하다. 생태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데 우리랑 같이 간 미국인들이 지름길로 오고 있다. 은퇴한 부모가 딸(심장 전문의-라오스에 의술 전수 중)을 찾아 여행 왔단다.  솜파밋 폭포는 콘파팽 폭포만 못했지만 우기에는 대단한 장관일 것 같았다.

솜파밋 폭포

 

이번에는 우리도 나무 그늘 밑 지름길로 쉽게 걷던 중 프랑스 식민지 시절 캄보디아에서 라오스 북부로 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했던 철도가 지금은 화차만 덩그렇게 남아있는 라오스 유일의 기차만 있었다.  

버려진 증기 기관차

 

3시 20분 배에 올라 메콩 강을 거슬러 돈콩으로 출발했다. 강에는 어부들이 간간히 있었고 강에도 수로표(이정표?)에 번호가 쓰여 있었다. 점점 숫자가 높아져 가는 강가 마을의 강변에는 강물에 젖은 흙에 채소농사를 짓고 있다. 건기에는 물을 주기가 힘들고, 강변의 흙은 홍수 때 쌓인 것으로 비옥하여 물이 있는 강변에 짓는 것 같다. 강물을 퍼서 채소에 주기도 하고 사람과 물소가 멱을 감기도 한다. 아이들은 강변 흙이 놀이터이고 어른들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씻기도 했다.

강변 포구 마을

강가의 채소밭(울타리는 소 접근 방지)과 씻고 있는 주민들

 

노을이 지면서 일몰은 시시했고 수로표 번호가 A60을 넘어 6시쯤 돈콩에 도착했다. 지루하지 않게 강변의 풍경들을 마음껏 관람하였다. 강변 주민들은 행복하고 근심은 무엇일까?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가진 만큼 걱정이 많다니까 없는 만큼 스트레스가 없어 달콤한 잠을 잘 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