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왕궁)
2월 22일 (수) 왕궁 2012년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시장을 구경하고 어제 갔던 여행자의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시장은 동남아 대부분이 비슷하고,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노점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전통 음식을 먹는 이와 바게트 빵을 먹는 이가 있다. 이 나라도 프랑스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이 빵을 먹는 식생활의 변화로 쌀은 풍부하지만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사돈 남 말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쌀 소비가 줄어들고, 아침은 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식생활이 바뀐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빵, 계란 부침, 커피, 시리얼, 우유, 과일, 그리고 굶기 혹은 건너뛰기 등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 말이다.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초중고교에서 급식을 한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문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상점 문을 연 거리에서 옷을 바꾸기도 하고 사기도 했다. 또한 쌀국수 소스를 두 병 샀다. 아들이 쌀국수를 좋아해 소스를 사 달라고 해 샀는데 어느 것이 맛있는지 몰라 제일 많이 팔리는 것으로 사서 챙겨 넣었다. 쌀국수는 태국에서 사 온 것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판매되어 안 샀다. 상점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베트남 제3의 도시라니까 번화해야 맞을 것 같다.
훼(Hue)는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남중국해 연안에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얕고 넓은 향(香)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남제국의 왕궁 다이노이가 있는데 훼[阮] 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식민지시대에 프랑스인들은 강 오른편에 거주했으며 오늘날 이 도시의 동쪽에는 상업지구가 들어서 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南越]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년경에는 참족(族)이 지배하였다. 그 뒤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이후 중부 및 남부 베트남을 지배하던 구엔가(家)의 수도가 되었으며,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응우옌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1883년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1940∼1945년 일본 점령 하에 있었으며 1947년 4월에는 비공산계의 베트남 임시 행정위원회가 여기서 조직되기도 하였다. 1949년 7월 1일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이 수도를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으로 정하면서 예로부터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1946∼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초기에 피해를 입었고 1963년과 1965년 심각한 내란에 휘말렸으며,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베트콩의 공습으로 심한 피해를 당했다. 이때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도서관·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 후 재건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호찌민시와 하노이를 연결하는 철도·도로변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종교·문화·상업의 중심지로, 정미·제재·섬유·시멘트 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훼대학·훼제국행정대학이 있고 응우옌왕조의 무덤들이 부근에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아침을 먹고 송흐엉(흐엉 강)을 건너 왕궁 관람에 나섰다.
훼성은 둘레가 10Km에 달하고 10개의 문이 있는 성으로 1804~1833년에 건설되었다. 응언문(禮仁門)을 통해 들어가니 길이 5m 무게 10톤의 청동 대포들이 4문 보이는데 사계절을 뜻한단다. 그리고 다섯 문 대포는 오행(火 水 木 金 土)을 의미한단다. 왼쪽으로는 1807년에 건축하고 1947년 재건축한 37m의 깃발 탑에 베트콩이 만든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훼성 안에는 4개의 문을 가진 황궁 성이 있는데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응오몬(午門) 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해자가 있고 해자 위 다리를 건너면 응오몬이 있고 성문 위에는 황제가 중요한 행사를 주관하던 오봉대(五鳳臺-다섯 마리의 봉황을 연상하는 지붕의 형태라고 함)가 있다. 1945년에 이곳에서 응우엔 왕조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 황제가 호찌민 임시정부에 권력을 이양한 곳이란다. 오봉대에 올라 잠시 관람을 하고 태화전으로 들어간다. 태화전은 황궁이라 기와 색을 황금색으로 입혀 놓은 것이 중국의 자금성과 비슷했으나 많이 탈색되었다. 1805년에 건축되어 황제의 대관식은 물론 황제의 중요한 업무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앞마당에는 문관과 무관의 석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우리나라 경복궁 같다. 태화전 바로 뒤에는 현임각이 있고 그 북쪽으로 자금성이 있으나 전쟁으로 많이 파손되었다. 세조묘(世祖廟)는 우리나라 종묘와 같이 왕들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세조묘를 지나 사원 앞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버스로 향했다. 여느 왕조와 마찬가지로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니 무상할 따름이다. 세계에 영원한 왕조나 제국, 국가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